회사란 틀을 벗어나면 '사회'의 외적영역에 거주하는 '이방인'이 된다.
어딘가에 속하지 않았단 불안과 자유가 공존하는 일상.
새벽 취침과 한낮 기상은 처음 며칠동안은 달콤한 꿈같지만 그 이후부턴 끊임없는 악몽의 근원으로 돌변한다.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악습관'을 몸에 정중하게 새겨넣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덕(Arete)이란 좋음의 요소를 습관화해 하나씩 꾸준히 쌓아갔을 때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상태라 말했다. 좋음이란, 플라톤의 국가에서 말한 과정도 좋고 결과도 좋은 일석이조의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방청 알바로 갔던 강연에서 그리스 철학에 관한 강의를 했던 탓에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는데, 내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부분들을 다시금 일깨워 되돌아볼 계기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늘 생각하던 공공의 이익, 최고의 선. 그것이 대체 어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아리스토 텔레스)에 명확하게 기술되었다고 교수는 말했다. 늘 읽자고 다짐했던 그 책이다. 다음 주에 도서관에 가서 제대로 훑어봐야겠다.
지금은 회사 밖 외적인 영역에 대해 좀 더 기술하고 싶다.
낮 시간동안 거리를 부유하며 깨닫는 건 회사 밖의 영역에도 사람들은 참 많다는 것이다. 종류마저 다양하다. 학생이나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나이든 사람들, 가끔씩 보이는 사회 초년생들, 파트타이머를 사는 젊은이들, 혹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물론 난 오전 시간제 근무를 해었기에 그 때의 시선도 지금과 별 다를 바 없긴 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에 전화해 알아낸 바로 분명히 "계약직"이라고 들었던 것에 비해 실제론 언제 그만두어도 상관없는 "일용직 근로자"로 명시되어있었다는 게 충격아닌 충격이다. 때문에 그렇게 언제라도 버릴 부품처럼 시간제 직원을 향해 폭언을 한다든가 비아냥 거리며 갑의 행세를 해댄 것이었을까, 라고 생각하면 그제야 앞뒤가 맞는다. 차라리 중간에 인력 파견 업체를 끼지 않고 본사 인사팀을 거쳐 채용됐다면 시간제 직원들에 대한 처우는 나아졌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우리를 뽑은 건 제작국 팀장이었으니까. 그는 늘 우리와 같은 널따란 사무실에서 함께 일을 했지만, 그의 모니터에 떠있는 것은 잡다한 블로그의 글들일 때가 종종 있었다. 그만큼 기업에 대한 시간제 직원 (일용직 근로자)의 영역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대상이 아니다. 그저 정식으로 고용된 사람들의 공백을 메워줄 일용직들, 정식 직원들이 꺼려하는 상사를 맡게 하는 폭탄처리반 정도로 여기는 순간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본다. IMF이전엔 몇시간만 일하는 아르바이트 생들도 정직원이란 명칭을 달고 퇴직금까지 받았다고 하던데 지금와서 보면 그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회사를 오랜기간동안 다녀온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가 단골메뉴처럼 등장한다. 나는 고작 1년 남짓한 시간을 시간제직원으로 신문사에서 근무했지만, 친구들은 적어도 몇 년씩은 한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얼마나 많은 고충이 있었을지 상상조차 가질 않는다. 다들 회사생활이 그런 거라고 되뇐다. 나는 우리 나라 회사 특유의 수직적 구도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결국 이 수직적 구도는 또다른 신입들에게 되물림이 되지 않던가? 젊은 혈기를 때려눕히고 회사의 말 잘 듣는 부품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회사의 사유화된 개인들의 실상이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버티고 버티며 점점 자신의 개성을 상실하고 일정 시기가 지나면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기억도 나지 않게 된다. 근 1년간 나는 오후에 준비하려던 여러 작업들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그것은 매일 같이 새로운 지면을 짜며 갑질을 당하고 난 뒤 '번아웃'을 겪으며 멍해진 정신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게 회사를 그만둘 계기가 된 가장 첫 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어떠한가? 자문하면, 여전히 일상 속에서 일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할 수 밖에. 자본주의와 그 핵심 축이 되는 회사들. 그들에게 기생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한 구조.
반대로 모두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이룰 수 있는 사회라고 가정해보면 사실 그것도 이상하다.
누구하나 절제하는 이가 없이 사치하고, 쾌락화된 인생에 흠뻑 젖어 서비스를 위한 직종은 로봇이 개발되지 않는이상 명맥을 유지할 이가 대체 몇이나 될까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저마다 각자의 삶에서 최선의 쾌락을 따라 산다면 타인에 대한 봉사는 거의 뒷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라는 매커니즘은 생활전선이라는 명분을 들이밀며 대중들에게 적당한 쾌락거리와 적당한 월급을 들이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삶에 적응해 어찌보면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나역시도 내가 준비하는 것들에 대한 확신보단 회사 안에 속하는 것이 사실은 안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늘 품고 지내는 것이다. 매일 매일을 그런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구인사이트를 검색하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여기저기 지원하길 반복한다. 그런 마음 한 켠엔 내가 애초부터 이루려던 어떤 다짐들이 내 압박감에 검게 그을린 채 꿈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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