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thoughts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

J.H. 2019. 1. 1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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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것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의 마지막 순간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때이른 나이에 찾아온 죽음은 위화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것도 병이 걸린게 이유라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품기 마련이다. 생명의 불이 타들어가는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나 자신의 생명이 타들어 가는 순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수직이 아닌 평행선이다. 어쩌면 수직이 될 수도 있지만 평행을 고집하는 것일수도 있다. 도태된 유전자를 기피하며 우성 유전자에 속하고 싶단 갈망이 그러한 소외를 일으키는 발화점은 아닐까? 혹은 과도한 불안에 시달리는 공황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면 달아나고 싶단 본질적 충동이 들 수도 있다. 


공황증상이란 널따란 벌판을 거칠게 내달리는 사람을 상상하면 된다. 단지 일반적 사람들과 차이점은 바닥의 상태다. 작은 싱크홀들이 수두룩 빽빽하고 구멍에 빠지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체력은 한계에 달하고 신경은 날카로워지며 숨을 헐떡거릴만큼 지치게 된다. 작은 돌부리 하나에라도 걸리면 싱크홀에 빠져서 영원히 나오지 못할까 두려움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그런 상황의 인간에게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타인에 관해 끊임없이 말하게 된다면 어떠하겠는가? 남을 걱정할만큼 여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해받지 못한다면 과연 몰인정하다는 비난의 화살까지 맞아야 하는겠는가? 타인에 관한 푸념을 일주일이 넘는 시간동안 참고 들어준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를 표해야하는 것은 아니냔 말이다. 게다가 그 일주일간의 푸념을 참아주다가 공황증세를 겪을 기미에 시달리는 와중이라면 더더욱 비난의 화살을 돌려선 안되는 것이다.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한 집에 산다는 것은 어떤 면으론 장점도 있지만 갈등이 심화될 때는 용납할 수 없는 두 인격체의 차이가 세상 표면으로 드러난다. 그 시간은 불평과 불만, 비난, 독설로 오염되며 장점마저 단점으로 변질시키는 편파적인 성향의 부딪침이 발생한다. 삶에 드리운 그림자란 이러한 인간관계의 마찰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격해지는 감정도 일상에 대한 부조리함도 인생에 대한 불만도 모두 인간관계라는 틀에 연결되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집합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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