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thoughts

두려움은 망상인가?

J.H. 2019. 1. 2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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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하나의 풍경으로 스쳐가는 그런 존재들. 

자아, 힘겹게 심호흡하며 현실을 연명하는 존재.

교류를 가로막는 괴리감, 고독감, 두려움, 신뢰받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부담스러움.


누구에게나 멍때릴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의 나에겐 더욱 그렇다. 쫓기듯 해치워야 하는 일상에서 벗어났음에도 무리를 이탈한 사회적 존재의 이후 행보는 불안정의 연속이다. 모든 인생이 불완전연소되는 결말을 맞이할 지라도 끊임없이 완벽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일상을 압박해온다. 그 압박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무가치한(어쩌면 일상적인) 선택으로 도피하고 시계를 멈춘 채 때로는 거친, 때로는 불완전한, 떄로는 편안한 호흡을 내쉬는 것이다. 왜 일상이 거부해야할 목록 속에 추가가 되었느냐 하면, 머릿속에서 규정지어진 관념이 일상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할 뿐더러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음을 자각해야하기에 알아서 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때론 불쾌와 불안을 야기하기에 그것마저 회피하려 발버둥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동질감보다는 괴리감이나 이질감을 매우 자주 겪게 되는데 이때 어떤 사람은 타인과 융화되기를 택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림자가 되길 자처한다. 나는 후자다. 인간관계가 쉽지 않고, 일종의 강박편집적 생각들을 양산해내기에 그 안에 발담그는 것이 힘들다. 관계를 길게 이어가며 요동치는 감각의 흐름을 따라는 것이 버겁다. 좋았다가 싫었다가 멀어졌다가 서운했다가 다시 가까워졌나하면 어느새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는 그런 인간관계가 허무하고 덧없다고 느꼈던 날들이 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난 껍데기 같은 소통이 편하다. 물론 그러한 소통이 안심이 되지만 진실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게다가 대화에는 진실 자체가 결여된 채 각자가 원하는 소재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즉, 그저 맞추어주는 것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 언어. 그 언어의 맥락 속에서 상호 교류가 되는 순간은 희박하다. 같은 관심사와 비슷한 나이대, 비슷한 사고 양상을 띠지 않고선 더욱 그렇다. 저러한 조건이 만족한다 할지라도 각자 품고 있는 생각의 파편이 어긋나면 대화는 갈팡질팡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루기 힘든 공처럼 되고 만다. 상대에게 온전히 맞추어 준 채 상대가 바라는 소재로 대화를 한다는 것이 오히려 쉽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소재를 꺼낸다고 하여도 그 대화가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할 거란 것을 알기에 또 사실 사람이 앞에 있으면 그렇게 많은 말을 주고 받아야 겠다는 마음 역시 생기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때론 회의적이고 공허하게 느껴지지만 그런 모습 자체를 배척하고 밀어내기에 그것은 그저 나 자신의 원형일 뿐이다. 내가 나를 거부한다는 것은 결코 건강한 마인드가 될 수는 없다. 반대로 내가 나의 그런 모습을 뜯어고치는 것도 잘 되지 않을뿐더러 억지로 꾸겨넣듯 고쳐놓았다 하더라도 머릿속의 불협화음은 갈수록 커져갈 뿐이니 헛소용 아닌가?


며칠 전, 응급실을 갔다. 지속적으로 잔잔하게 찾아오던 공황증세가 급격히 심해져 몸 상태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녹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몸집을 과격하게 불린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몇 년 전 응급실을 몇 번 갔었고, 그 때 이후로 혼자 자연스레 답답한 숨고르기를 수십 수차례를 반복해왔었는데 기어이 병원을 찾고 말았다. 진정제를 맞고 나서야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느슨하게 풀어졌고 손발이 저린 느낌도 사라졌으며 강박적이고 압박적인 생각들로마저 부옇게 흐려져 실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과호흡도 진정이 됐고, 죽을 것 같던 감각도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시도때도 없이 괴이한 느낌이 나를 덮쳐왓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두려움, 그것이 원인이었다. 어그러진 일상과 맥이 풀린 몸, 꽁꽁 동여맨 두려움이란 짐이 양 어깨를 짓눌러왔다. 순서가 어긋난 호흡방식은 물론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만한 부분도 아니기에 매일매일이 고역이었다. 감기가 오거나 몸살이 난거면 치료를 하겠지만, 저혼자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을 때 그 한모금의 숨이 껄끄러운 것이 되었을 때 그 상황을 대체 어떻게 빠져나가느냔 말이다. 나도 잘 모르겠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그런 기분이 삶 내부로 침투할 때마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의사도 무언가를 해줄 순 없다. 친구도, 연인도, 부모도 무엇을 해줄 수가 없다. 엄마는 내가 침착해져야 한다고 하지만, 당장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을 때 침착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회피 밖에 없지 않느냔 말이다. 혼란스럽고, 두렵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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