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다. 유혹에 휩쓸리게 된 경우도 있고, 현실적 이유로 인한 타협일 수도 있다. 불가피한 특정 상황을 마주한다는 것은 곧 신속한 선택이 요구되는데 코 앞에서 회피한다 하여도 악몽처럼 선택의 순간은 결국 다가오고야 만다.
모르는 척 눈을 감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고인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썩어서 악취를 풍기다가 희미한 존재감마저 완전히 증발돼 버린다. 자신에 의한 자아의 도태, 침식 그리고 자멸. 그 후엔 무엇이 남을까? 역할극? 누구 누군가의 누구, 어디에서 일하는 누구, 몇살 누구, 여자 혹은 남자, 아줌마나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타인 1,2,3,4,5,6,7......
선택을 강행하는 자아의 목소리는 이따금 머릿속의 환각이 되어 메아리친다. 쾌락을 추구하는 뇌의 일부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여기저기 맺힌 쾌락의 꿀을 음미하며 도파민을 발산해댄다. 망각의 점들이 늘어나 일상 곳곳에 균열을 일으키고 잿빛그림자는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켜 깊은 어둠안에 잠식시킨다. 하루하루 헛도는 체인처럼 허공을 가를 뿐, 목적도 목표도 망망대해의 부표처럼 무의미하게 흩어져간다. 죽음과 공허로 가득한 어둠 속 시야는 혼탁해져 사리분별이 안 되고 사유는 딱딱한 돌처럼 굳어 생각의 파편조차 붙들 수가 없다. 고민과 자학적 생각들이 거대한 먹구름이 되어 마음의 바다 위에서 폭풍처럼 날뛰고 육체는 쾌락에도 무뎌져 병실의 환자처럼 일상을 무기력하게 연명하는 것이 진짜 인생이라 할 수 있을까?
불현듯 찾아오는 숨멎의 공포, 이상과의 괴리감에 갇힌 자아의 음울한 몸짓, 쾌락으로 뒤엉킨 저급한 일상의 회색빛 말로.
나아갈 수 없는 항해, 떠오르지 않는 태양, 영원을 상실한 자연적 요소들, 저물어가는 시간, 청명한 불협화음, 금속성 멜로디의 환멸, 범람하는 실오라기, 풍요롭게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호흡한번 깊고 길다랗게 반복하는 유의미하지 않은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