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thoughts

회사와 개인의 투쟁

J.H. 2018. 10. 1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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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신문사에 근무하며 세세한 것들을 관찰해봤다. 편집부와 조판자 사이의 원활한 소통, 교열팀과 조율을 해야하는 과정 속에서 끊임 없이 수정되는 기사원고와 그에 따른 수정판을 다시 출력할 때 출력부에 전화를 걸어야 하는 혼잡스러움의 연속. 신문 발행 전까지의 사투. 그것이 신문사의 시스템이다.

그동안 쉴새없이 시간이 흘러갔고 1년 분량의 신문이 발행됐다. 그 부분에 있어서 평범한 일보다 뿌듯함은 있다. 시간제 직원으로 근무하면서도 신문사에서 일한다는 사실은 글과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작은 열정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조판자로 근무하는 내내 겪었던 불편사항은 해당 기사의 헤드라인 제목을 뽑아야 하는 편집자들과 원활한 소통이 힘들 때 생긴다. 여러 편집자들과 신문 판을 작업해 보았는데 서로 겸손한 상태를 유지하며 소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며 작업하는 내내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는 사람 역시 있었다. 후자의 편집자는 많은 조판자들이 꺼리는데 조판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조바심이 나게끔 벼랑 끝으로 몰고 가려는 해당 편집자의 호된 꾸짖음에 일시적 자아 존중감의 상실과 자기 능력을 비하하게 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게 되기 때문이다. 일에 관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판단력을 최하로 떨어뜨리고 그것은 일상 생활까지 연계되어 자신의 확신에 의문을 품게 되고 만다. 게다가 하지 않던 실수까지 늘어나 일상적 삶의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도 커진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렇다고 하여도 인성이 그릇된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상호존중이 안 되는 그가 왜 중장년의 나이까지 회사 안에서 살아남았을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조판자가 아닌 동료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동료들의 의견은 99퍼센트 수용하고 긍정적으로 대답해준다. 그러나 지시사항을 존중하며 일처리를 해야하는 조판자에겐 ‘강약약강’의 태도를 일삼는다. 자리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다보니 억압의 표출이 약자에게 집중되었는지 여러 경우의 수를 떠올리게 된다.

어찌됐건 그를 제외하고 함께 작업했던 편집자들은 그리울 것 같다. 일부는 대화가 잘 통하고 손발이 맞아서 편집조판을 할 때는 물론 잠깐의 수다타임도 즐거웠었다. 신문사를 떠나고 나만의 작업에 몰두해 이모티콘 디자인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2주간의 기한을 제시하고 그만두겠다고 팀장님에게 말해야 하는데 망설여진다. 그가 처음 나를 뽑아주었을 때가 떠오르고, 매일 보던 사람들도 눈가에 아른거린다. 하지만 사회구조 탐험을 위해 일을 시작했던 터였고,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더불어 일상의 함몰을 초래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걸 더이상 참는 것도 불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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