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thoughts

회사를 나왔다

J.H. 2018. 11. 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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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참았던 순간들이 세상 밖으로 터져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만두겠다고 수없이 되뇌던 순간들이 실현됐고 명치에 맺혔던 응어리도 날카로운 화살촉이 되어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화살은 적중했다. 나는 마지막에야 합당한 사과를 들을 수 있었다. 과유불급. 늘 되새기는 말이다. 적당한 기준을 유지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한 기업체의 관리자라면 마땅히 가져야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만일 관리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때 그 사업장은 눈치싸움과 암투로 얼룩져 일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스트레스를 불러 일으키는 장소가 되고 말것이다. 그것은 회사가 기우는 극적인 사유가 될 수 있다.   



며칠 간 집에서 푹 쉬었다. 하루가 납짝한 판처럼 흘러간다. 회사를 그만두길 결심하며 준비하려던 작업들은 여전히 더디다. 좀 더 진득하게 회사를 다녀야지, 라고 다짐했던 순간들로 인해 정신적 리스크가 발생했고 결국 번아웃은 지금처럼 게으름 증상으로 돌변해 내 삶을 집어 삼키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오랜만에 평일 아침을 한가하게 보내는 터라 마음이 굉장히 편하다. 

만일 내가 지금까지 편파적 대우를 참으며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상사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신문을 발행하는 회사라 보수적인 체제 하에 직원들을 숨막히듯 감시하는 것이라 변명을 대고 싶다면 똑같은 이유로 받아쳐주고 싶다. 다른 편집자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그 한 분만 그러시는 건가요? 라고. 옆 신문사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물으니, 비슷한 상사가 있다고 했다. 나처럼 늘 함께 붙어서 하나의 지면을 짜야되는 상황이라면 내 입장의 괴로움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가 주는 안락함과 쾌적한 환경도 그곳을 지옥으로 뒤바꾸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곳이 된다. 반면에 나 자신은 어떠한가? 고용센터에 문의를 해보니 시간제 근로자의 경우 계약직이 아니라 일용직 근로자로 매월 근무내역이 익월 15일에 월별 고용보험 가입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한달에 한번씩 새롭게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셈이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근로자들을 일컬어 '시간제 근로자'라 부르고, 나처럼 1년이 넘도록 회사를 다녔음에도 정직원 이하인 애매한 존재로 그룹핑이 된 채 근무를 해야하는 환경. 

시간제라는 차별대우와 정직원들이 담당하고 싶지 않은 시한폭탄같은 편집자들을 우리에게 떠맡기는 시스템은 일종의 고문과 다를 바가 없다. 알아도 모르는 척, 결국 정직원들은 평생 회사를 다니겠지만(정년엔 퇴직이겠지만) 시간제 직원들은 고작해야 2년(나라에서 정해놓은 시기: 이 기간이 넘으면 정직원으로 변경된다. 그걸 원하는 회사가 굉장히 드물다는 게 현실이다.)혹은 1년, 그 잠시동안 머물다 스쳐가는 사람들이란 단편적인 생각들이 그들의 태도를 오만방자하고 무례하게 만든 것일까? 가장 약한 위치라 칭해진 근로자들에게 아무런 사유도 없이 비난조로 압박과 권력을 휘두르려는 행동은 절제되어야만 한다. 짜증섞인 폭언과 인격적인 모독은 결국 그것을 행한 자들에게 돌아갈 날카로운 화살이 될 것이다. 마지막 근무날(예정보다 3주나 앞선), 나는 다시금 회사의 시스템을 겪으며 회의감을 품었다. 

왜 사람들이 망가져 가는 것일까?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내가 1년간 지켜본 바대로라면 그들도 그들 나름의 생활상 문제들이 존재한다. 환자가 있는 가정형편이라든가, 회사에서 실력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찌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든가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 단순히 명함에 박힌 xx일보 차장이라든가, 총괄팀 과장이라든가 하는 간판을 타인들에게 내밀며 명예욕을 맛보며 마치 자신이 xx일보 자체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결국 그 회사를 나오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예전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던 밤이 생각난다. 택시기사는 내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무슨 기업의 중역이었지만 지금은 명예퇴직을 하고 택시기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한없이 상냥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내가 내릴 때까지 무례를 범하지 않고 대해주었다. 결국 이 사회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자본가들과 근로자들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인데 자본가들은 근로자들을 자신의 세계에 영원히 속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적당히 몸담게 한 뒤 내보내면 그만인 것이다. 때문에 해당 기업에서 근무를 하더라도 중용의 자세를 지켜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그들이 나온 대학이 서울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라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인격적 도덕을 내다버리는 행동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수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극소수의 몇명이 심각했다. 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편집자들은 배울점도 많고 시간제 근로자라고 해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즐거운 말벗이 되어주고 조언을 해주기까지 했다. 그런 대다수가 근무하는 환경에서 극소수의 무례한 자들이 물을 흐린다는 것은 굉장히 부조리한 현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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