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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vity and Inertia , 인간의 행동양상

J.H. 2020. 3. 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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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물체는 자신의 운동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다.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하고, 운동하는 물체는 원래의 속력과 방향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 (두산백과)

사물과 인간이 구분되는 요소는 '이성'이라 할 수 있다. 이성은 잘못된 자신의 행동을 탓하고, 죄의식을 발동시킨다. 사물은 그런 사고과정을 거칠 수 있는 뇌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이성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위에 발췌한 '관성'의 정의에 대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인간이 가진 습관과 관성이 같은 관성에 포함된다는 거다. 인간들은 누구나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행동에 길들여진 채 빠져나오지 못 한 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잘못된 습관을 끊어내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그게 누군가에겐 우울증을 불러 일으킬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질나쁜 습관을 끊어내지 못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힘든 문제다. 이성은 자꾸 그 습관을 끊어내라 재촉하는데 몸은 쉽게 되지 않으니 죄의식이 갈수록 쌓여가서 자신의 존재감을 갉아먹어 점점 일상 모든 것들에서 자신감이 떨어져가고 자신의 선택이 잘한 것인지도 확신도 사라져 가며, 타자에게 받는 지배에 익숙해지는 형태의 삶이 될 것이다. 결국 그것이 자본주의의 부품화와 연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간의 부품화를 통해 자본주의는 원활하게 돌아간다. 4차산업 혁명으로 모든 3D업종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 자리를 대신해줄 인간들이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인간에 대한 활용도는 광범위하다고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다양성이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보인다. 사회곳곳마다 전문기술이 없더라도 도제형식으로 한 사람마다 교육이 들어간다면 인간은 못해낼 것이 없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물론 속도 차이와 기본적으로 타고난 능력차이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사고능력과 신체능력의 평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어떤 곳에서든 성실히 노력한다면 꾸준한 가도를 밟아 발전할 수 있는 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도출되는 결과다. 물론 예측불가능한 사고나 도박 알콜 중독 따위로 인한 이탈 역시 살아있는 생명이자 욕망에 굴복한 인간의 단상이기에 범위 내 오차값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잘못된 습관으로 돌아가서, 관성의 정의에 의하면 물체는 자신의 운동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그렇듯 우리도 일상적으로 익숙하게 해온 행동들의 틀이 깨지는 걸 원하지 않는 성향을 내포하고 있는데 관성의 정의와 일치한다. 내성적인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이니 외적으로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고(내면이 그렇지 않더라도), 외적인 사람들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타고난 본성이므로. 즉, 물체의 성질로 치환시킬 수도 있다. 각자 가진 개성들이 표출되며 한 사람의 인간이 특색이 생기는데, 어째서 우리는 이성을 작동시켜서 자연스럽게 타고난 것들을 배척하고 죄의식의 대가가 되도록 태어난 것일까? 그게 내 의문이다. 

잘못된 습관이 생겨서 평생토록 그 습관을 고치지 못해 살아가는 것조차도 그 사람의 삶에서 주어진 삶의 과제일 수 있는데 죄의식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생기는 것인지 의아하다.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나 자신을 위축시키고, 또 익숙해서 벗어날 수 없는 습관들을 경멸하고, 동시에 타인을 향한 열등의식과 불만을 가슴 속에 응집시킨 채 트라우마를 머릿속에 새기는 과정이 인간의 신경정신학적인 부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이유라 활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잘못된 습관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백지같이 순수한 어린시절 타자에 의해 심어진 경우라면 그건 억울할 만하다. 내가 관성의 정의를 읊조리며 느낀 것은 안좋은 습관이란 결국 생기지 않도록 초반부터 냉정하게 잘라내어야 행동에 고착되어 관성의 가도를 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관성이 나타나 버리면 그 고착된 습관을 끊어내는 것은 일상 생활 자체를 억제해야할만큼 커다란 고통과 심리적 타격을 초래하기 때문인데, 애초부터 아무생각없이 모든 말들과 행동들을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지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비판적 시각을 기르고 분별력을 키워서 거름망을 평소에도 가동시키고 있어야 타자의 그릇된 행동과 그 습관에 물들지 않게 된다는 거다. 특히 가족과 연인, 친구들의 케이스에서 이게 무의식적으로 스며드는 부분을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된다. 주변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논할 때 바로 안 좋은 습관들을 서로 주고 받는 영향을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번 생긴 습관은 관성 속에서 기생하며 인간 삶 전체를 집어삼켜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폭풍과 같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력의 경우는 한 사람이 가진 가치관과 비교해볼 수 있다. 우리는 지구가 끌어당기는 중력으로 붕 뜨지 않고 땅 위를 걸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데, 중력의 세기가 큰 만큼 우리가 높은 곳에서 떨어질 경우에 다칠 확률 역시 커진다는 거다. 만일 중력이 세지 않다면 다칠 확률이 줄어들 수도 있다. 가치관 역시 그렇다. 유연하게 사고하는 방식을 가지지 않고, 단단하고 경직된 생각 속에 갇혀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시대착오적 발상을 일삼고, 제 고집에 넘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소통을 이어가며 사회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성향이야말로 정도를 유지하며 순조롭게 변곡점들을 이어가며 안정적이며 흥미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타인의 그릇된 행위들과 사고 방식들을 구별한 분별력과 그것을 판단할 이성적 사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통합시켜 융합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방식과 삶의 다채로운 변곡점들을 이어갈 본능적 감각.

그런 것들이 초기 교육에서 이루어져야할 기본적인 배움의 시작단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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