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소설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각을 말하는 거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존재가 깃털보다 가벼워지는 순간에 대한 위화감과 불안함을 말하고자 한다.
사회적 인간, 어디를 가도 어느 무리에 소속이 되어 그룹화 생활을 하게 되는데 요즘처럼 sns가 활발한 시대에는 더욱 그 그룹화가 뚜렷하게 개인의 삶을 침범해 온다. 혼자라는 고독감은 소셜라이징을 통해 완화되곤 하는데 어떤 이들은 인간 소통의 과정에서 더욱 커다란 고독을 마주하게 된다. 공동체 안에서의 사소한 소외, 그것이 개인의 자존감을 하락시키고 미약한 우울감을 동반한다는 전제하에 개인이 집단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의지는 자연스레 내부로부터 반감을 불러일으켜 여러가지 상충되는 순간을 겪게 된다. 급작스레 사람들에게서 동떨어지는 듯한 괴리감에서부터 사회생활을 등지고 은둔자가 되어 살고자하는 욕망의 상승까지. 사실 현대인들의 내부엔 실행하지 못한 억눌린 자유의지가 언제나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갈수록 쌓여간다. 영화나 드라마 따위의 상업매체를 통해 일순간 망각을 겪게 되고 해소되는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도 다시 현실의 삶으로 돌아오면 매한가지 같은 갑갑함에 갇혀서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갈망하게 된다. 억눌린 욕망은 그릇된 방식으로 뛰쳐나올 경우가 더 많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에겐 자기만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쾌락소비를 통해 해소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면 쾌락의 강도를 점점 높여가며 해소를 한다해도 결국 더욱 큰 욕망을 맛보아야만 하는 악순환을 야기할 뿐이다.
작은 일탈들을 통해 억압된 자유의지는 오히려 훼손된다. 자존감도 붕괴되고 마찬가지로 자아는 더욱 죄의식에 휩싸여 스스로 그 안에 잠식되는 과정을 거쳐가는 수순을 밟게 된다. 성공과 부를 거머쥔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에 굴절된 시각을 갖게 되는 것도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사회가 자본 중심으로 흘러가고 당연히 자본가들이나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들에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집단 속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참을 수 없는 자기 존재의 가벼움은 부와 명예의 레벨화로 인해 더욱 강력하게 작동하게 되는데 부를 성취하지 못하고 명예를 가지지 못한 이들은 사회로부터 도태되며 존재의 무존재 혹은 무가치의 영역으로 치부되게 된다. 사회로부터의 격리 그리고 자아의 그림자화. 한 개인이 더이상 사회구성원으로 행동하지 않을 때 벌어지는 박탈감은 현대인이란 지위에 언제나 불안감을 동반한다. 뇌리를 휘젓는 자본을 끌어 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타인 혹은 지인들 사이에서의 존재의 가벼움은 숨통을 조여오고 결국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투명한 시선은 혼탁해지고 마는 것 아닐까? 외부로부터 내린 판단, 자신의 존재의 값어치의 하향 평준화 따위가 자아를 밀어내고 개인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 순간 풍요로운 열등감은 삶 곳곳을 침투해 열등의식으로 오염시키고 울퉁불퉁한 오목렌즈를 낀 채 여생을 보내야 한다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수긍하며 현실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에만 급급한 물살에 휘둘리며 사회화란 틀 안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사회생활’이라 정의한다.
결국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혀 자기 존재를 참을 수 없는 가벼운 깃털보다 못한 것에 가두어놓고 자의식의 숨통을 조여간다면 그 어디에도 자신을 위한 쉴 곳은 없는 셈이다. 누구도 쉴 곳을 내어주진 않는다. 환상을 투사해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한 연인도, 따뜻한 보금자리라 여겼던 가족의 품도, 언제나 내편일 것 같던 친근한 친구들도. 일시적 도피처에 불과하지 않다는 전제를 내건다면 개인은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short though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 효과 (0) | 2018.12.24 |
---|---|
삶의 불완전성과 공황장애 (0) | 2018.12.23 |
사랑과 환각 (0) | 2018.12.18 |
몸이 아팠다 (0) | 2018.11.29 |
일상, 빛과 그림자 (0) | 2018.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