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오는 날, 몸이 아팠다.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을 가야했지만 점심시간이라 병원 접수 자체가 불가능했고 곧바로 기차시간이 다가와 가질 못했다. 서울에 와서도 저녁이라 죽으로 끼니를 해결한 뒤 집으로 향했을 따름이다. 기차에서 내내 멀미가 나서 더 힘들었다.
증상은 새벽부터 시작이 됐는데, 갑작스레 밀려든 공허함 속 호흡의 부자연스러움, 근육이 질기게 뒤엉킨 듯한 몸살기운이 천천히 스며들어 아침이 되었을 때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입맛이 뚝 떨어졌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미각을 느끼는 기능이 저하되면 삶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될 때가 있다. 내가 그러했다.
1초 동안으로 맛과 이후의 공허. 무언가를 씹고 있다는 생각과 위장의 메스꺼움, 욱신거리는 몸의 고통. 괴로웠다.
일요일에서 월요일까지의 여행, 그리고 오늘은 목요일인데 여전히 몸상태가 좋지 않다. 어제는 종일 돌아다녔고 괜찮았지만 오늘은 몸이 낫지 않았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아침 밥도 메스껍고, 몸살도 여전했다. 나는 다시금 미각의 저하로 인한 공허에 휩싸였다.
삶이란 무엇일까?
'사람이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를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늘 그렇듯 책을 읽고나면 모든 내용들이 머릿속에 남는 것이 아니라 순간동안 느낀 강렬한 지각과 감각만이 추상적으로 기록될 뿐인지라 말로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것은 책을 쓴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결정적으로 사람이란 무엇으로 사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서 책을 덮었을 때 만족보단 실망이 컸다.
지금에서 내가 삶이란 무엇인지 떠올리는 까닭은, 일단 나이가 중년을 향해가는 지점이라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난 어린시절부터 늘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해왔다. 나는 누구이며, 사람은 무엇인가? 또 삶은 어떻게 왜 살아야 하는가?
요즘들어 몸살이 닥쳐오자 질문이 메아리 친다.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틈이 생겨 그 틈이 점점 넓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사막화일까, 오아시스화일까?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 그 틀 안에는 여러가지 장단점을 가진 요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은 여전히 훼손된 상태로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난 그 안에서 삶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본다. 물질만능주의, 돈만 있으면 뭐든지 못할 게 없는 세상. 사회에 만연한 갑질문화와 대물림되는 악습들, 쾌락을 조장하는 영상매체들, 부품화되어 개성을 상실한 사람들.
만일 내가 당장 엄청난 부를 얻게 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갖고 싶은 것들을 전부 사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땅도 사고. 그 후에는?
그렇게 상상하니, 갑자기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그리고 이어서 떠오른 질문은, 내가 어떻게 삶을 살고 싶은 거지? 상업적인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살고 싶진 않아.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늘 내 안에 일어나는 갈등이 첨예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다시 물었다. 다수에게 도움이 되면서 나 자신 역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그게 대체 뭔데? 생활비를 충당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순 없잖아? 갈등이 점점 압축되며 돈을 버는 문제 안으로 흡수된다. 자유로운 사유가 막히는 순간이다. 경제적 자립을 위한 비용이란 전제가 없이 자유로운 선택은 불가능하다는 자본주의의 명제 앞에 주저 앉아 한숨을 쉰다.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삶은 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삶은 무가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악행과 선행 두 갈래를 놓고 보았을 때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역할에서 마땅히 성인이 해야할 의무로 편향된다면 무언가 사회에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해야함은 당연하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공공이익에 관련된 것은 상당한 가치성을 갖게 되고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된다. 그러한 생각이 한층 더 나를 고민으로 몰아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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