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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시선

J.H. 2018. 10. 1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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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자기화된 시선으로 타자가 되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쉽다. 하지만 타자에서 또 다른 타자가 되어 타인들을 응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타자를 응시하는 나는 원래의 '나'도 아니며, 그렇다고 타자 그 자체도 아닌 또 다른 '무엇'이다. 


나는 일상에서 곧잘 그러한 제3의 타자가 될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다.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는 나와 너라는 단편적 개념이 아닌 전세계적으로 확장되어 한 세대를 아우리는 우리들을 뜻한다. 실컷 생각없이 놀다가도 불현듯 저러한 질문이 떠오르면 당황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데, 그 때마다 나는 대체 어떤 대답을 원하는 것일지 고민하게 된다. 분명 저 질문은 내 자신이 나에게 던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질문에 답을 한다 하여도 나는 어떤 혁신적 시도를 실행할 힘도 수적인 우세를 포함하고 있지도 않은 지극히 한 개인일 뿐이다. 때문에 저 질문은 때때로 나를 허무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문득 명동을 걷다가 또 다시 저 질문이 내 머릿속에 나타났다. 나는 대체 왜 이런 질문이 내 머릿속에서 태어나는가를 고민해야 되겠다고 느꼈다. 


첫번째 근원은 '책'이다. 거시적 관점을 생각하게 만드는 플라톤의 철학서적 몇 권들이 떠오른다. 국가론, 향연, 파이돈. 그 외 7년 전쯤에 읽어 기억이 흐릿한 메논과 기타등등의 책들. 천병희 번역판을 읽었었다가 최근에 다시 읽은 건 정암학당 번역본이다. 특히 '향연'의 경우는 번역자와 출판사가 시행한 특별강연을 통해 강독 및 토론 과정에 참여했었다. 토론이 끝나고 나서 내가 느낀 점들은 철학 서적들을 향한 여러 나이대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다는 것과 특정 구문에 대한 궁금증들의 수요가 높아 더욱 다양한 강연들이 시행되어도 좋을 거라는 점이다. 


제3의 타자가 되어 나를 바라보는 순간은 플라톤 서적 안에서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했던 소크라테스에게서 파생된 것은 아닐까? 책이란 수백장으로 된 한 사람의 사고과정을 낱낱이 기록해놓은 광대한 흐름의 집결체다. 때문에 한권을 완독했을 때 그 사람의 사상이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게 된다. 훗날 내가 그 책의 내용을 잊더라도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사유의 흐름은 내 안에 생명력을 갖고 생존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거시적인 관점으로 나도 모르게 순간이동하게 되는 타이밍이 생겨 일상에서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제3의 타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의 장점은 무엇일까?

불필요하고 사소한 일이나 쾌락소비를 바람처럼 흘려보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수를 위해 중요한 근원을 탐험하게 될 때는 부수적인 요소들은 전부 페이드아웃되며 어두워진다. 근원에 있는 진리를 갈망하게 되면서 다시 사회에 관련된 책을 리서치해 읽는 순서를 따른다. 


단점이라고 하면, 현실에 안주하지 못한 채 붕 떠있는 감각을 느껴야 한다는 거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일에서 멀어져 머릿속 세상으로 들어오면 거시적 관점만 존재할 뿐 디테일한 것들을 전부 베일에 감춰진 상태가 되기 때문인데 이게 어찌보면 사회의 부품이 되기엔 오작동을 일으킬 만한 문제거리가 된다. 때문에 고개를 휘저으며 다시 눈 앞에 펼쳐진 디테일한 업무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찾은 해결책은 이렇게 장단점을 분류하고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기 위한 글을 기록하는 방법이다.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제3의 시선'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확대된 공간과 동떨어져 인공위성까지 올라가 세계를 내려본다고 하여도 인생이 크게 달라질 요소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지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개인, 그 개인들이 모인 세상. 사회 시스템을 창조한 사람들. 인플레이션이 오르락 내리락 움직이며 생겨난 대공황. 어찌보면 현대 사회는 과거의 역사와 함께 성장하며 발전된 돌연변이 같은 게 아닐까? 눈에 보이진 않지만 다양한 영역들(과학, 기술, 경제)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빚어진 일순간의 헤프닝이 세상을 뒤바꾼 케이스 일지도 모른다.  


시선은 자연스레 현실에 머문다. 부조리함에 희생되는 많은 사람들의 삶, 월간 생활비에 의존해 불투명한 미래를 걷는 많은 사람들. '돈'이라는 단어를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굴레. 불공평한 처우와 계층간의 불화. 그 모든 것들을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나는 '제3의 타자'가 되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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